2008년 대한민국 경제전망

원문: 다음 아고라
글쓴이: 미네르바, 블로그 주인이 아는곳까지 수정을 했습니다.

1. 저축은행의 PF 부실을 통한 전년 대비 수익율 = -23% 감소, 손실 추정액 = 5014억..
현재 8개 상장사 신민, 서울, 제일, 푸른, 진흥, HK, 힌국, 솔로몬의 평균 영업 이익 감소율= -22%~-53% 사이일것으로 추정됨. 현재 이중 2곳은 시살상 레드 라인으로 올해도 장담 못하는 상황이다.(블로그 주인의 개인적 견해로는 이 두 레드 라인중 한곳은 솔로몬일것으로 추정한다)

PF 부실 채권: 정부 추산=-45조 2천억..업계추산=-90조 (이유 : 토지에 대한 선투자 비용 부담 -16조에서 -24조 부분에 보통 건설사 자체 추산을 내릴 때 미분양 물량을 50% 축소 발표 했다는 점을 볼때 최대 -90조원까지 예측) 결국 올해 안으로 제 2 금융권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저축은행--> 보험--> 투신--> 카드사로의 확산 도미노 파급 확산이 우려 되는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 긴급 구제 금융의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제 2 금융권 부실은 -> 제 1 금융권으로 필연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2. 내년 2009년 1/4 분기까지 현 경제 상황이 유지 될 경우 최대 -23% 정도의 아파트 가격의 구조 조정 단계를 거칠 수 있다는 상황

이유: (GDP, M2, 91일물 CD 유통 수익률을 포함한 매계 변수 10여 가지로 데이터 산출, 기간 = 2000~2008년 1/4 분기)

2000년 1/4 분기~2008년 1/4 분기 전국 평균 아파트 가격은 166.2%, 주택 가격은 96.1% 상승한 상황.

PIR(연소득 대비 주택 가격비율) = 6.6배, 서울포함 수도권 = 9.8배

2006년 서브 프라임 직전 뉴욕의 PIR = 7.9배. L.A 지역 = 11.2배에 근접 하는 상황임 + PF 부실 채권의 금융권 압박으로 위험한 상황..

한국인의 개인별 자산 포트 폴리오 구성 비율(부동산 및 실물 자산 측면) = 89.4%

이는 일본의 63%와 미국의 67%에 비해 사실상 절대적 비율로...... 유동성 측면에서 매우 우려될만한 수준이다.

파급 효과: 이러한 현상은 곧 바로 개인의 자산 가치 폭락으로 이어 질수 있으며 현재의 인위적인 부양을 현재 실시할 경우

예상 시나리오 = 2009년 2/4 분기 까지는 일단 적정 가격대의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미국 주택 시장의 바닥점을 찍는 2009년 1/4 분기나 2/4 분기를 기점으로 동반 폭락의 가능성이 있음.

따라서 현 상황에서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보이는 현 관점에서 2008년 4/4 분기에서 최대 09년 1/4 분기 내에 최소 손실 범위 내에서 자산 손실을 최소화 하며 처분할 마지막 기회로 보임로 보인다. 현재는 실 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의 부동산의 경우 보유 자체가...... 자살하지는 걸로 밖에는 판단이 안 되는 상황.

변수: 내년부터 시작될 신도시 입주 시점과 행정 도시 건설등의 공급 확대책이 이어지는 추가 공급 물량이 나올 경우를 고려해서 09년 1/4 분기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의 시점으로 분석 하고 있는게 유력한 상황.

그럴리가 없다는 반론 = 일본 LTV(주택 담보 대출 비율) = 120% .......미국 LTV = 85%....하지만 한국의 LTV = 52.2%이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실상 기업형 부동산 버블의 붕괴라는 시각이 맞는 말이고 미국의 서브 프라임과 같이 일시적은 타격은 없는대신 장기간에 걸친 저강도 충격으로 실물 자산 가치의 하락(도쿄의 경우 주택가격이 매년 30%이상씩 폭락했다)으로 인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론: 현재 원화 유동성이 117 (기준:100)을 육박 하는 수준으로 사실상 위험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의 시점이 최소 8월에서 최대 9월로 사실상 기정 사실화 되는 시점에서 세금 환급으로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한다는 이유는....?

 

뭐 간단하게 말하면 시간을 벌어 주자는 것이다.. 한나라 애들 부동산 자산 포트 롤리오의 처분과 조정을 위해서...... 아마도 또 다른 제 2차 피해 확산의 전주곡일지.. 지금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시행 되면 최소 2009년 1/4 분기 까지는 그런대로 굴러 갈 것이다.. 거기에 금리 인상 시점을 8월에 안 하고 10월경으로 늦출 경우.. 이건 100% 시간 벌기용 미션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다만 9월 하순이나 10월경까지 금리 인상이 늦추어 질 경우 파급 효과라는건 누적 분까지 일시에 끌어 올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제 1차 피해는 일반 가계가 아니라 중소 기업이 될 것이다....(미국에서는 현재 11월 4일 대선 레이스 전인 10월달 연방 금융통화 위원회에서 10월 28일경에 금리 이상을 사실상 기정 사실로 보고 있다.. 따라서 여러 대내외 여건상 아무리 늦어도 10월 초에는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제 2 금융권은 지금 시한 폭탄을 끌어 안고 있다... 8월부터 PF 만기가 돌아온다. 지금 8, 9월달은 아무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작살날지 말이다......

3. 글로벌 경기 동향 - 미국 경기 동향

서브 프라임에서 파급된 신용쇼크는 이제 프라임 모기지(우량주택담보대출 : 한국식 대출 담보라고 생각하면 간단함)까지 확산 일로에 있다. 현재 JP 모건 체이스와 아메리칸 익스 프레스 추산 = 2/4 분기 연체율: 4%.....2009년 1/4 분기 예상치=9~11%..

현재 손실은 JP 모건을 주축으로 2/4 분기 손실액이 1/ 4 분기 대지 2배 이상을 상회 하는등 악화일로를 가고 있는 상황.. 현재 프라임 모기지 전망 = Terrible.

IMF는 세계 금융 안전 보고서(GFSR)과 FRB 양쪽 모두 다 최대 미국 경기 하강 시점 바닥을 2010년에서 2011년 1/4 분기 까지는 현재의 신용 경색과 경기 침체를 감수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 1 순위 경책 목표로 이미 물가 인플레이션으로 우선 순위를 맞춘지 오래인 상황이다.

국내 파급 효과: 재정부 추산 6월 해외 부동산 투자 건수는 185건... 투자 금액 6800만 달러.....

상대적으로 투자액수가 적기때문에 일반가정에는 큰 영향이 없을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로인한 불경기로 인해 기업들의 피해는 존재한다고 봐야함. 미국을 포함한 북미 지역의 집값 하락세가 계속 되면서 손실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시장은 이미 과잉 상태로 현재 투자 유보가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임.

 

그와 더불어 미국 제조업의 사실상 붕괴를 의미 하는 GM과 포드의 도산가능성이 46%에 달하는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S&P 기준 신용등급 CCC 에 해당 하는 수준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 2011년 내로 부도가 날 것 같다는 전망이다.

GM: S&P=B / 무디스=B3  ....... 포드: S&P=B/ 포드=CAA1.......

현재 상황은 패디메-프레디맥(5조 2척억 달러 모기지)-> 워싱턴 뮤추얼로 옮겨 가는 상황이며 현재 추정 손실액은 분기별 손실액이 -240억 달러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 최대 저축 대부 조합인 워싱턴 뮤추얼의 부실 상황은 지방 중소형 금융 회사로 지금 확산 일로에 있으며 연방 예금보험 공사(FDIC) 보험 대상 금융사 7500개중 2009년 연내 150여개 사가 이미 파산 위험 수준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미국발 신용 쇼크는 절대 아직 끝난게 아니다...


4. 중국 경제 상황.....

2008년 2/4 분기 경제 성장률=10.1%.. 월 스트리트 예상치를 밑도는 수치로 중국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긴축 재정의 여파로 해석됨.

결과: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7.7%->7.1%로  인프레이션 억제 효과가 가시화 되는 상황.. 

 

  

 

하지만 물가 억제를 위해 과도한 위안화 평가 절상과 은행 지급율을 올리면서 수출 기업들의 파산으로 인해 금융권 부실의 악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중국 인민 은행은 물가 억제를 위한 긴축 조치로 은행 지급율을 추가로 올해에만 5차례 끌어 올려 17%까지 올린 상황->195조를 중앙은행이 통화량 흡수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결과 : 올해 2008년 4/4 분기부터 2009년 1/4 분기 내에 대 중국 수출은 대략 -14% 정도 감소할 걸로 예상됨. 현재 한국의 2/4 분기의 반짝 수출 호황은 사실상 환율 효과에 의한 것. 중국내 긴축 조치로 인한 대중국 수출 타격은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 현재 중국 금융 당국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의 중국내 외국인 자본 이탈로 인한 중국판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가장 우려 하고 있는 상황.. 98년은 태국발-2008년은 중국발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에 따른 대비책으로 대중국 국내 자산 비중을 낮춰 중국발 쇼크에 대비 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중국내에서는 제한 송전으로 중국내 일반 기업 절반 이상이 생산 차질로 인한 기업 이익에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며 올림픽 이후의 핫머니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 되는 상황에서 위기의 전염 제 1 타켓은...... 아마도 한국이다. 중국내의 펀드와 해외 투자 자산의 대대적인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

5. 국제 원자제 시장 가격 동향을 보면 국내에서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알수 있다...

 

   

 

  

  

  

  

  

  

더이상 긴말 안 하겠다....... 딱 보면 답이 나오니까...현재 밀 작황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으며 다만 유럽 일부 지역에서 6월 가뭄과 7월 홍수로 인한 작황 감소분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천연 가스의 가격 안정 추세가 이어 지고 있는 가운데.........뭐?.....30% 인상이라니? 거기에 커피값 인상이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에 한다고 하니..

맨 위에 개별 원자재 가격 동향을 보면 연초 대비로 -8%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 다만 최근 단기간의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 쳐 올랐니까 올린다면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또 속여 쳐 먹고 있는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결론: 닥치고 현금이다....... 한나라당 애들 부동산 자산 포트 폴리오 조정 하는데 시간벌기용으로 또 다시 이용당하지 말아야만 한다. 지금 강남에서는 필사적으로 현금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단 정부에서 낸 정책이 부동산 경기 부양 어쩌고 하면 최대 2009년 1/4 분기까지는 개인 자산 보존의 마지막 기회가 올 것이다. 그 후는 두고 볼 일이다.

 

각자... 알아서 준비를 해야만 한다.. 절대 아직 끝난게 아니란 말이다.

by 떼굴 | 2008/08/15 13:17 | 정치와 경제 | 트랙백

This is propellerman!! 프로펠러맨 광고에 나오는 약물의 반응들

This is propellerman!!
주의!
18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절대 재생하시면 안됩니다.



http://www.propellerman.tv 이곳이 프로펠러맨의 공식 팬 사이트
http://www.mega-bang.com 광고에 나오는 제품 사이트입니다.

공식홈페이지에 있는 이 제품에 대한 반응들을 소개합니다. 20알에 99.99$라는군요.

저는 더이상 남자가 아니였습니다. 지금 전 옛 생활로 되돌아왔습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John (34), Minnesota
성인 영화의 전문적 작가로써 이 제품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Carlos (32), Buenos Aires
Mega Bang pimped my stamina and my ego. Now I do not ask. I just take what I want and I get it.
Bill (43), South Carolina <- 해석이 난감하네요
저를 도와주세요! 제 남편이랑 더이상 침대에서 !@#$$^#?!@#!!$@!?걸 할수가 없어요!!
Paula (56), Stockholm
제 나이는 78살입니다. 저는 같은 연령대들과 빙고게임을 하거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 이제 20살 전으로 돌아갔고, 영원한 젊음을 발견했습니다. 고마워요 메가 뱅!
Simon (76), Florida
저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고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일상을 침대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_-;
Vincent (55), Sydney
어떠한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섹스의 품질!
Tom (42) Los Angeles
오 마이 갓! 저는 이 느낌을 영원히 간직할겁니다! 고마워요, 메가 뱅!
Jimmy (38), Kentucky
저는 비아그라가 제 성생활을 증진시켜준 기억을 갖고있습니다만, 메가 뱅으로 바뀐 제 일상생활은 절대 못 잊을겁니다.
Arnold (60) California
우리가 결혼한 이후로 제 남편은 늘 정력(?)이 부족했지만, 지금 우리는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Nicole (40), Paris

참고로 절대 비아그라같은 의약품이 아닙니다 -ㅅ-; 우리나라 표현으로 하자면 건강보조식품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저런 반응은 대체(...)

by 떼굴 | 2008/08/15 11:36 | 병맛나는 일상 | 트랙백

[스크랩]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살펴본 전쟁의 '맨얼굴'과 시민병사의 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살펴본 전쟁의 '맨얼굴'과 시민병사의 힘 

병사는 결코 우아하게 죽지 않는다               

이글은 김상회 한백연구재단 부소장·政博 <sahngwhe@hanmail.net>님이 2회에 걸쳐 연재했던 글을 하나로 합친 글입니다. 2회분의 글을 하나로 합치면서 주제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했지만, 글 내용 자체에 손을 대지는 않았읍니다. 오래전에 쓰여진 글이기는 하나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군기'문제에 대해 매우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주는 글이라고 생각해 올리게 되었습니다. 허락없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소에 거의 '변장'수준에 가까운 진한 화장으로 꾸미는 여자의 '맨얼굴'을 대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그 모습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1998년 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는 거의 도발적으로, 화장기 없는 전쟁의 '맨얼굴'을 관객들에게 들이민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이라는 것의 실체적 진실에 직면해 당혹감을 느끼게 만든다. 차라리 외면해버리고 싶을 정도의 당혹감이다.

'타이타닉'과 마찬가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영화는 4형제 중의 한 명인 라이언 일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세 형제들이 모두 전사하는 불행을 당하자 구조대는 라이언 일병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그를 구출하는 작전에 나선다.

실존 인물은 뉴욕 출신의 프리츠 닐란드(Fritz Niland) 일병이다. 실제로 그의 세 형제 중 두 명은 노르망디 전투에서 전사했다. 나머지 한명은 나중에 살아돌아오기는 했지만 당시 버어마 전선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닐란드 일병이 노르망디 작전에 투입되자 미군 수뇌부는 닐란드 가문의 마지막 남은 아들만이라도 생존할 수 있도록 노르망디 전투 지역에 배치되었던 그를 후방 지역으로 옮겨주는 '특별 배려'를 한다.

영화는 만약에 미군 수뇌부가 닐란드 일병을 노르망디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구조대라도 조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나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등에서 보여준 스필버그다운 상상력과 영화의 원작(D-Day, June 6, 1944)을 집필한 미국의 저명한 전쟁 역사학자이자 이영화의 자문을 담당한 스티븐 앰브로스(Steven Ambrose)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치열한 '사실적 접근'의 결합이 바로 이 영화이다.

스필버그의 상상력과 결합한 전쟁사학자의 사실적 접근

영화는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미군들의 오마하 해안(Omaha Beach) 상륙 '전투'로 시작된다. 첫 도입부의 무려 30분간이 이 전투 장면에 할애된다.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만큼 수많은 전쟁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하나의 전투 장면이 30분간이나 지속되는 영화는 없다. 그런 데도 많은 관객들이 그 장면이 그토록 오래 계속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지루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30분이라는 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스필버그의 전투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영화등급 판정이 주로 '폭력성(violence)'과 '선정성(nudity)'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이 정도로 적나라한 폭력성을 여과없이 담아낸 영화가 어떻게 'R(Restricted:성인용으로 제한)등급' 판정을 피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독일군 진지가 만반의 '환영 준비'를 갖추고 있는 오마하 비치에 미군 상륙정들이 새까맣게 몰려든다. 상륙정 안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미군 병사들이 '달랑' 소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공포와 긴장으로 마치 사형장을 향하는 사형수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상륙 명령을 기다린다. 몇몇은 십자가 목걸이에 키스라도 하지만 대부분은 표정조차 없다. 이미 시체와 같다.

드디어 상륙이 시작되고 독일군의 집중 사격이 시작된다. 많은 병사들이 땅에 발도 못 디뎌 보고 상륙정 안에서 죽어간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총탄이 몸을 관통하기도 한다. 바다는 순식간에 피빛으로 물든다. '요행히' 그 때까지 살아남은 병사들은 소총 한 자루 들고 생사를 오로지 운에 맡긴 채 폭탄이 터지고 총탄이 그물같이 덮이는 해변을 그야말로 아무런 대책없이 질주한다.

그때까지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쟁영화나, 같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The Longest Day(1962)'는 이런 장면에서 항상 원거리 촬영을 해왔다. 원거리 촬영을 통해 전쟁의 끔찍한 '맨얼굴'을 피해 왔다. 적의 진지를 향해 돌진하던 병사가 총에 맞아 고꾸라지고 폭탄에 몸이 튕겨져 나가는 모습이 원거리에서 '조망'될 뿐이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발칙하게도', 선수의 거친 소리와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잡아내는 새로운 스포츠 중계 기법처럼 병사들 하나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총에 맞은 병사는 '우아하게' 죽지 못한다.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쏟아진다. 팔이 잘려 나간 병사는 떨어진 자기 팔을 주워 들고 망연히 해변을 헤맨다. 마치 군의관을 찾아 팔을 붙여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려는듯. 파열된 수도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병사들 몸에서 피가 솟구치고, 카메라 렌즈에까지 핏방울이 튄다. 부상 당한 병사는 죽지도 못한 채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자기 다리에 자기 손으로 앰플 주사를 마구 찔러댄다. 출혈로 얼굴은 백랍처럼 창백해지고 사지에는 경련이 일고 자신의 끔찍스러운 부상부위를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더듬어 보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고통과 공포는 극에 달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죽어간다.

스포츠 중계처럼 병사들에게 카메라 들이대

전쟁이라는 인간의 행위를 그 전쟁의 목적이나 정치적 동기, 혹은 옳고 그름 따위의 관점이 아닌 참가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재구성하는 데 주력했던 앰브로스는 '자신이 총에 맞은 줄도 모르고 깨끗하고 우아하게 죽는 행운을 누릴 확률은 1%도 안 된다'고 증언한다. 전사자의 99% 이상이 극심한 고통과 공포 속에 죽어간다는 것이다. 앰브로스는 또 지금까지 만들어진 전쟁영화의 전투 장면들은 '사실과 다르게 너무나 깨끗하고, 표피적이고, 짧게 그려져 왔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전쟁의 '30년 주기설'을 주장한다. 30년마다 커다란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30년이라면 세대의 교체 주기와 일치하는 시간 단위이다. 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세대가 바뀌면서 그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사라지고 전쟁의 참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새로이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큰 전쟁이 30년 주기로 터지는 까닭

세대가 바뀌어도 전쟁의 참상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전쟁 문학, 전쟁 미술, 전쟁 영화가 담당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거의 대다수의 전쟁 문학과 전쟁 영화는 전쟁 영웅을 그려내고 이들을 미화한다. 참상을 묘사하기보다 승리를 찬미하고, 전쟁 속에 '꽃피는' 전우애나 사랑 따위를 전면에 배치한다. 심지어 코미디물로까지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기에 급급하다. 그 결과 전쟁의 참상은 가려지고, 전쟁이라는 것은 때로는 '멋지고' 때로는 '로맨틱'하기까지 한 '해 볼만 것' 쯤으로 인식된다.

다행히도 1970년대 말, 특히 베트남전쟁 이후 전쟁의 비인간성, 참상을 고발하는 '플래툰(Platoon),'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8),' '디어 헌터(Deer Hunter:1979)' 등 몇 편의 '반전영화'가 제작되었고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 중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가장 도발적으로 전쟁의 '맨얼굴'을 충격적인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그 시작과 과정에서 지구촌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국가와 민족, 인종을 초월하여 '전쟁 반대'라는 공감대를 확보하고 한 목소리를 내었다.

인류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커다란 전쟁'을 경험한 지 30년에서 5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제 그 전쟁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전쟁의 '한 세대 주기설'에 따르면 분명히 위험한 시간대를 통과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재앙을 경험한 지 벌써 한 세대 이상 시간이 흘렀지만 지구촌의 대다수 사람들이 '반전'에 공감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이고 또 고무적인 현상이다.

'플래툰','지옥의 묵시록','디어 헌터' 등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영화들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여준 전쟁의 '맨얼굴'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만은 안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바라건대 스필버그가 우리 앞에 들이댄 전쟁의 '맨얼굴'에 질겁해서라도, 그리고 그 도입부 30분간의 영상을 악몽처럼 자꾸 기억해서라도 전쟁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이다.

자유로운 병사는 기꺼이 죽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스필버그 감독이 섬찟하리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낸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대학살극에서 실제 희생자 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독일군 3만명, 미군 2만9천명, 영국군 1만명이 각각 전사하였다. 웬만한 도시 인구 규모의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한 셈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확인된 전사자들일 뿐이다. 사실상 전사자로 분류되는 실종자 수는 독일군만 21만명에 달한다. 미군 실종자수도 10만명에 달했다. 결국 하나의 '전투'에서 30~40만명이 희생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목포나 포항 정도의 인구 전체가 사라진 셈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쟁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광기에 가까운 살육전이었다. 흔히들 일본군이 가장 정신무장이 철저하게 돼 있고 용맹무쌍하다고들 하지만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도 이렇게 처절하지는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은 지 6년 후 한반도에서 재연된 것이 '인천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은 '무식'하고 야만스러운 전투의 대명사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전에선 10만명의 북한군이 방어에 참가했고 7만명의 미군이 투입되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이 작전은 그러나 2시간 만에 '싱겁게' 끝났다. 미군 전사자 수는 300명에 불과하였다. 미군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치자 월미도를 방어하던 북한군은 제대로 항전도 못하고 진지를 버린 채 도주했다. 그 다음 날 김포쪽에서는 맨발로 도주하던 6000여명의 북한군 병사가 미군의 포로가 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마치 미군이 바그다드에 한 발이라도 들여놓으면 사생결단 내고야 말듯 '허풍'떨던 이라크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가 정작 미군이 들이닥치자 무기를 버리고 군복을 벗어던진 채 총 한 방 변변히 쏘아보지도 않고 도주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노르망디, 인천, 그리고 바그다드

노르망디와 인천과 바그다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북한이나 이라크같이 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 당하고 정신무장을 강요당하면서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도주하고, 독일군같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에서(독일의 경우, 적어도 히틀러 이전까지) 성장한 병사들은 그렇게 용맹스럽게 싸웠을까? 어떻게 한 전투에서 30만명 가까운 전사자를 내는 광기에 가까운 사생결단의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을까.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기강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어려울 것 같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훈련도 제대로 안 받은 채 전선에 투입된 미군병사들은 또 어떻게 그렇게 용맹했을까?

전투의 현장에 있었던 병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집요하게 추적한 스티븐 앰브로즈(Steven Ambrose)의 '사실적 기록'을 토대로 제작된 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많은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Tom Hanks)인 밀러(Miller) 대위는 직업군인이 아니다. 전쟁 전에는 평범한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밀러 대위는 자신의 고등학교 제자뻘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훈련도 제대로 안 받은 병사들을 인솔하고 노르망디의 살륙전에 뛰어든다. 그런 데도 그들 '시민 병사(citizen soldier)'들이 그곳에서 보여준 용맹성은 실로 가공할 만하다.

밀러 대위의 부대원들은 상륙 과정에서 이미 수없이 죽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해변에 도착한다. 엄폐물 뒤에 납작 엎드리고 있던 그들은 "너희들이 여기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뒤에 오는 병사들이 오지 못한다'는 한 마디에 또 다시 목슴을 내놓고 뛰기 시작한다. 그들이 거기서 주저 앉았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끝장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저히 뛰쳐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병사들은 뛰었고 죽어갔다.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로 한 공립학교의 파트 타임 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대했던 미국 고등학교의 자유분방함을 넘어서 방종에 가까왔던, 그야말로 엉망진창, 난장판에 가까왔던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이다. 수업시간에 교사보다 더 큰 소리로 '당당하게' 잡담을 하고, 수업 중에도 아무 때나 교실을 들락거리고, 쉬는 시간에 교사가 지나가는데 복도에 늘어서서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교사 얼굴에 대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 '아이들'이 전쟁터에서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용맹스러워진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돌격하지 않으면 사살해버리겠다는 일본군 부대장 식의 협박 없이도 미군 병사들은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뛰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독일군들은 독일군들대로 진지 앞에까지 진격한 미군을 맞아 북한군이나 이라크 병사들처럼 도주하지 않았다. 미군과 얼굴을 마주댄 채 수류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끝까지 총질을 해댄다. 그렇게 서로 싸우다 30,40만명이 죽어갔다.

자유로운 병사가 용감하다

스티븐 앰브로즈, 빅터 데이비스 핸슨(Victor Davis Hanson) 등의 전쟁 역사가들은 '자유로운 병사가 용감하다'고 결론 내린다. 누구의 강압에 못이겨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인식할 때, 그리고 그러한 가치가 자신들에게 부여될 때 병사들은 목숨을 바쳐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민 병사'의 힘이라고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앰브로즈는 아마도 그것을 보여주려 상당히 노력했던 것 같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적진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밀러 대위의 부대원들은 서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고 불평을 쏟아내기도 한다. 한 대원이 자기는 이런 짓은 못하겠다며 중도에 빠지겠다고 하자 밀러 대위는 그러라고 하면서 "네가 부대에서 이탈하더라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그 대원은 이탈하지 않고 행동을 같이한다. 밀러 대위는 도중에 전사한 어린 병사가 애처로워 숨어서 흐느껴 울기도 한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밀러 대위의 부대는 상급자의 일방적인 결정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전 대원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모아 대처한다. 중구난방의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에 모두들 힘을 합친다.

절대 열세였던 이들은 독일군의 전차부대를 맞아 양말을 벗어 그 속에 수류탄을 몇 개씩 집어넣는가 하면 콜타르에 묻혀 독일군 탱크 바퀴에 붙여 폭파하기도 한다. 수류탄과 탄환이 모두 떨어졌을 때는 박격포탄의 뇌관을 제거하고 집어던져 수류탄 대용으로 사용하는 '창의성'을 발휘한다. 질겅질겅 씹던 껌으로 깨진 거울쪽과 길다란 막대기를 접합시켜 적진을 살피는 '신병기'를 즉석에서 제조하기도 한다. 모두가 철저한 '고증'에 의해 재구성된 '사실'들이다. 그러한 일체감과 창의성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지시에 의한 조직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것들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다, 신세대 병사들의 군기가 엉망이다'하는 우려가 많이 들린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여주는 노르망디 상륙전투는 군대의 진정한 군기는 강압적이고 혹독한 훈련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 개개인에게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보장되고 병사들 개개인이 마음 속으로 그것들이 목숨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할 때 생기는 것임을 시사한다.

'왠지 시시껄렁해 보이고 군기가 빠져보이던' 미군은 목슴을 내놓고 싸웠고, '살벌하기 짝이 없어' 보이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는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한국군은 어느 쪽일까? 북한군은 어느 쪽일까?

by 떼굴 | 2008/08/03 18:02 | 정치와 경제 | 트랙백 | 덧글(1)

[무기] 마지막으로 제식채용된 볼트액션식 소총 Mle1936, 통칭 MAS36(프랑스 육군)

오랜 기간동안 프랑스는 무기라는 분야, 아니 유럽의 역사 흐름 전체에 있어서 혁명적인 일들을 이루어 내왔지만, 사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 군이 대체 무슨 무기를 들고 또 어떻게 싸웠는지 알려진 사실들이 너무 적은 편이다.

이번글에서는 기본적 개념의 정립 차원으로 그들이 들고 싸웠던 소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것이 알고 있는 사람만 안다는 Mle1936 (통칭 MAS36)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전쟁을 겪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전쟁에 진절머리가 났다. 영국과 독일과 달리 프랑스는 주요 공업지대가 적군에게 '유린'당했기 때문에 국방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러므로 국방의 기초가 되는 무기의 발달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이중에서도 특히 소총의 탄약변경이 절실히 필요했다. 탄약 변경은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주지만 평소에 쓰던 8mmx50 Rim 탄약을 Rim less 탄약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Rim부착 탄약은 볼트액션식 장전소총으로 사용할 때 클립이 막대모양이 아니고 약간 휘기 때문에 제조하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야한느 이유는 Rim부착 탄약은 약협에 정확히 맞추어 장전하지 않으면 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 또 기관총탄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당시 사용되던 기관단총의 탄창에는 라이플탄의 클립을 이용해 넣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클립으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경기관총에 총탄을 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별볼일 없는 그것 하나때문에 경기관층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노출된 개활지 전투에서 피눈물을 맛본 프랑스에게는 총탄변경은 매우 시급한 문제였다.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의 사상자중 70%가량을 '기관총'하나에 의한 희생자로 보기도 한다.)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발명한 무연 화약탄인 8mm 레벨탄 시리즈. 프랑스는 1880년대 이후로 이러한 구식 흑색화약탄 형태의 8mm 탄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3년전에 겨우 바꾸는데 성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동안 프랑스는 탄 끝 림드부분(탄 끝부분에 -선의 형태를 띈 곳) 하나때문에 탄피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썩여만 해야했다. 이 문제는 복잡한 군수문제와 엉켜 전쟁이 끝나기까지 제대로 된 경기관총 하나 만들어 보지 못한 매우 중대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는 베르티에 소총의 5발 클립. 구시대적인 탄약으로 인해 탄창의 모양이 이렇게 될수 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인해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진흙구렁에서 피눈물을 맞보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모범답안이였던 Kar98. 이 소총의 개량형 모델 Kar98K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활약했으나 길이가 10cm미터 줄어든 것을 빼고는 별차이점이 없었다.(탄은 물론 부품까지 거의 모두 호환)

Kar98K의 5발 클립, 이 탄환은 MG34나 MG42모델과도 호환이 되었다.


장전모습

누구랑 달리 깔끔하게 들어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실용화되고 있던 메탈벨트를 사용했을 경우, Rim부착 탄약이 들어갈 때 걸리기 때문에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았다. 일반 면벨트를 사용하고 있었을 때는 Rim less였겠지만, 만약 Rim부착탄약이었다면 마찬가지었을 것이 뻔했다. 덧붙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벨트식 기관총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점은 그다지 표면화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1924년, 7.5mmx54탄이 완성. 드디어 1929년 Mle 1929 경기관총(통칭 MAC1929)도 완성됐다. 이 탄약은 1990년 초반까지도 사용될 정도로 우수한 총탄이었다. 여하튼, 곧 이 탄약을 사용할 수 있는 소총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 소총개발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전쟁뒤 궁핍한 예산문제도 있었겠고 무엇보다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베르티에 (M1907/15)소총이 대량으로 있었고 그것의 총탄도 엄청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이놈이였다.


 

 "사용할 수 있는 소총이 있는데 왜 새로 만들 필요가 있지?"

  

 물론, 옳은 말이다. 새로운 총탄이라고 해도 위력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변함이 별로 없었다. 새로운 소총 설계에 부족한 예산을 넣고 싶은 맘이 없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래도 1932년에는 Mle1932소총이 완성. 이것을 기본으로 1936년 Mle1936(통칭 MAS36)이 세상의 빛을 보았다.

Mle 1936 소총은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제식채용된 볼트액션식 소총이었다. 뭐 같은 시기에 그 유명한 반자동식 M1 개런드 소총도 사용되었지만, 미국이 공황에서 발버둥치려는시기에 제식 채용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보급률은 제로라고 밖에 표현이 불가능함으로 직접적 비교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1936년, 세계의 정세를 본다면 프랑스 남서쪽에는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을 무렵. 동쪽을 보면 독일이 배째라는 듯이 군비확장과 영토확장을 실행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프랑스는 군비확충을 해야만 했다. 분명히 마지노선이라는 절대요새가 있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독일과의 준비는 만전이라고 생각되었는지 프랑스는 보병장비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군편제가 제1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점에도 군비확충은 "하긴 했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프랑스는 심상치 않은 독일의 낌새를 눈치채고 영국과 함께 외교노력으로 독일은 서쪽에서 동쪽-폴란드 시선을 향하게 했다.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하면 프랑스는 독일에게 선전포고. 독일의 대다수 병력은 동쪽으로 향했으니 서쪽의 프랑스가 공격하면 독일의 패배가 확실한거라고 생각했다.

  

개전 한달만에 폴란드가 지도에서 사라지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1940년 5월. 독일은 폴란드를 정복하고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군은 일반장비나 야포 ,항공기는 독일군에게 한두걸음 뒤쳐졌던데다가 당시 편제나 특히 '전술'이 시대착오적인 제1차 세계대전을 바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당시 가장 현대적 전술을 구사하였던 독일군에게는 삽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동안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건설한 마지노선에도 나름대로 기대를 해보았겠지만,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 작전 그대로 전쟁이 진행되는 바람에, 반대로 마지노선이 군인들을 콘크리트에 가둬놓은 셈이 되어 세계를 호령하던 강대국이 전쟁 발발 1개월만에 지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_-;

  

Mle1936소총은 독일과의 전면전이 된 1940년 5월 대량채용이 되었지만, 전투경험이 불과 1개월뿐이라 성능이 좋은지 나쁜지 짐작하는 것은 무리라 할 수밖에 없다. 뭐, 프랑스가 점령당한 이후, 전후에도 생산은 계속되었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1940년대에 생산이 종료되었다고 생각되지만, 1949년까지 프랑스 육군은 계속 쓰고 있었다. 1940년대 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주력소총으로 사용되었고 인도차이나(베트남)를 점령한 군인들을 굴복 시킨 베트남도 대량으로 사용했다. 결론적으로 뭐 프랑스가 프랑스 소총에게 당했다는 말.
  

1968년 파리에서의 폭동으로 경찰이 이 Mle1936을 가져가 폭도를 진압했다. 이녀석도 나름대로 수명이 질긴 녀석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때까지도 쓰인것을 보면 신뢰성부문에서는 꽤 믿을만 했었던것 같다.

  

Mle1936 소총의 큰 특징은 전체 길이가 짧다는 것. 1m 이하로 정말 짧지는 않았지만 1020mm는 제식보병소총으로서는 가장 짧은 부류이다. 이정도 길이라면 카빈형도 만들 필요가 없다. 밑은 다른 소총과 비교한 것이다.

국명    제품이름      전장   총신장
프랑스 Mle1936       1020   575
미국    M1 Garand   1100   600
일본    99식 소총     1118   655
독일    Kar98k         1105   600
러시아 M1891/30     1303   803


글쓴이의 거리감각이 제로라 보이는것과 달리(?) 상당히 짧은 소총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길이가 짧으면 조준이 멀리 되지 않는다는 결점이 있다. 소총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늠쇠(프론트 사이트)와 가늠구(리어 사이트)가 있지만, 볼트액션식 소총의 경우는 노리쇠 조작의 관계상 가늠구가 총탄 장전구 앞에 있었다. 사수로부터 보면 눈과의 사이가 떨어지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전체 길이를 짧게 하면 조준선이 짧아지므로, 결과적으로 오픈 사이트에서의 조준에서는 명중률이 나빠질 수가 있다. 다만 이 Mle1936 소총에서는 가늠구가 노리쇠덮개에 있었기 때문에 조준선일 길게 할 수가 있어서 그러한 문제는 없었다. 전체 길이를 짧게 했으니 이 점을 배려했던 것이다. 게다가 영국 SMLE 소총과 같이 이점을 배려해 노리쇠 핸들이 볼트 후단에 있었다.

  

또한 볼트폐쇠블록이 SMLE 소총과 같이 볼트 뒤편에 있었다. 이것은 장전을 할 때 후퇴길이가 짧아지는 이점이 있다. 단지, 반동이 강할 수밖에 없기에 명중률이 낮아진다는 점도 있다. 그렇지만 Mle1936 소총은 이후에 프랑스 육군이 제식저격소총으로 사용한 것을 보아 반동은 단지 물리적인 것일 뿐, 명중률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여진다. 외관상 특징이라고 하면, 총상의 나무 부분이 기관부를 사이에 두어 나무가 두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보통 소총은 나무가 일체이다.

  

장점이 있다면 단점이 있기마련. Mle1936 소총의 단점은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 노리쇠 핸들을 후단에 놓기 위해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안전하지 않다. 사실, 후방에서는 총탄을 장전하지 않으며 교전시 안전장치는 필요 없기 때문에 필수불가결하지 않을 수 있다.

백병전시 총신덮개 안에 휴대하는 스파이크식 총검을 반대로 꽂아 사용했다고 한다.

by 떼굴 | 2008/08/03 14:19 | 2차 세계대전 무기사전 | 트랙백

18禁 게이머 33문 33답

오렌지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1. 당신의 18禁 입문작은?

수험생 신분이였던 2004년경 당시 한글패치된 피아캐롯2를 통해 여기까지 오게되었습니다.=_=; 정말 한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온몸으로 소스라치게 느끼고 있지요(...)


2. 언제, 누구의 권유로 인해 플레이했는가?
글쎄요, 딱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우연히 프루나쪽을 통해서 접했던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나이 먹은것에 비해 이것(?)을 알게된 시기가 다른분들에 비해서 상당히 늦은 편이군요. 수험생이였을때 처음 해봤으니까 말이지요(...)


3. 18禁을 처음 접했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나?
.....처음 접했을때, 여주인공 팬티 보인것만으로도 모니터상으로 보는 제가 부끄러워했었던것 같네요. 뭐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용기를(!) 내서 한걸음씩 배워가다보니 이제는 이런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왠만한 정도로는 아무런 자극이 없네요. 쿨럭;


4. 지금까지 플레이해왔던 18禁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3개 꼽는다면?(첫번째 질문과 중복 불가)
Key - AIR, Kanon이랑 Snow정도?


5. 위 작품들을 뽑은 이유를 적어 본다면?

Key에서 제작한 카논은 한글패치로 플레이 했었습니다. 1998년도에 출시된 게임이라도 믿겨지지가 않았었지요. 그당시에 장르를 불문하고 보통 게임들이 배경음악으로 미디음원파일을 사용했었던것 같은데... 카논은 98년도 막 태어난 MP3를 사용했습니다. 2006년 가을부터 방영된 애니메이션에도 게임의 배경음악, 오프닝, 엔딩이 모두 그대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감동적인 스토리랑 맞물려서 마치 제자신이 게임내 주인공인듯한 느낌을 자아내더군요. 저에게 정말 많은 눈물을 안겨주었답니다.

에어도 마찬가지로 1999년도 게임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완성도가 높습니다만, Key에서 만든 다음 작품인 클라나드의 경우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면이 있는것 같네요. 뭐 그래도 Key사 작품들은 하나(토모요 애프터)를 빼고 시나리오 그 자체로만으로도 왠만한 소설책 수준을 뛰어넘습니다만, 그간 시나리오를 담당하셨던 마에다 준님이 리틀버스터즈EX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신다니까 개인적으로 정말 걱정되는군요.

스노우도 역시 잔잔한 감동을 줬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6. 지금까지 18禁을 어느 정도 플레이했나?
글쎄요; 어림잡아 클리어 한것만 25개~30개 정도 될겁니다. 그리고보니 조금하다가 때려치운것도 상당히 많군요(...) 조금하다가 때려치운것들은 능욕물이라던가 귀축물같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7. 18禁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리틀버스터즈의 쿄우스케(18禁이 아니라서 안될까요?)


8. 그 캐릭터가 마음에 든 이유는?
막장이니까-_-;


9. 18禁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리틀버스터즈의 나츠메 린, 카논의 나유키
애완용으로 냐옹이 9마리를 키우는 나츠메 린, 냐옹이들도 배틀모드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하악하악 나, 나의 나유키짱!!!



10. 그 캐릭터가 마음에 든 이유는?
우선 귀엽기고 하고, 왠지 모르게 저의 숨겨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것 같네요.


11. 당신은 순애? 그렇지 않으면 귀축?
으음. 아마도 순애쪽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눈물나는 시나리오면 무조건 Pass인것 같습니다.


12. 18禁에 등장한 대사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일어나지 않기때문에 기적이라고 불리는 거예요. 아마 카논의 시오리가 했던 말이지요.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군요.



13. 히로인이 당신(게임 속의 주인공)을 부르는 호칭 중에 가장 좋아하는 호칭은? (ex : XX군, XX상, XX쨩, XX선배, XX선생등)
ご主人様(고쥬진사마)도 조금 끌리지만 역시 おにいちゃん(오니쨩) 이쪽이 더 좋군요. ㅠㅠ


14. 어떤 타입의 연인이 좋은가?(ex : 소꿉친구, 선배, 선생, 흡혈귀, 여동생, 미소년등)
소꿉친구쪽이랄까요? 비정상적인것은 싫어합니다.


15. 만약 당신이 어떤 게임 속의 어떤 캐릭터가 될 수 있다면 누가 되겠나?
리틀버스터즈의 나츠메 쿄우스케(맞나?)가 한번 되고 싶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아쉽게도 18禁이 아닌 관계로... 아직까지는 딱히 되고싶은 캐릭터가 없군요.


16. 만약 당신이 게임 속의 캐릭터와 결혼할 수 있다면 어떤 캐릭터와 하겠는가?
글쎄요. 딱히 18禁이 아니더라도 제 마음속에는 나츠메 린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보면 이것도 매우 '비정상적인' 관계랄까요(...)


17. 16번의 캐릭터와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는?
모성본능(...) 아니지, 숨겨진 보호본능을 자극합니다. 이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십니까? 


18. 이 제작사에서 나온 작품이면 이것 저것 잴 것없이 반드시 플레이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뢰하고 있는 제작사가 있다면?
Key, Type-Moon 정도랄까요.. 뭐 너무나도 잘 알려진 회사들 뿐이군요(..)


19. 좋아하는 원화가는?
디지캐럿의 원화를 담당하셨던 코게돈보님, 제 그림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분입니다. 뭐 옛날 이야기지만요.. 요근래는 리틀버스터즈를 너무 플레이 한탓인지 NA-GA님의 그림도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장래희망까지 게임에 의해 좌지우지될까봐 걱정입니다.-ㅅ-; (코나타처럼.. 그당시 꿈을 살펴보면 과거 좋아했던 만화를 알 수 있다던가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20. 좋아하는 라이터(작가)는?
아마 리틀버스터즈 액스터시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고 하셨던 마에다 준님.


21. 18禁을 플레이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 작품은?
좀 많습니다. 제가 눈물이 좀 많거든요(?)


22. 시나리오가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Key사의 토모요 애프터를 제외한 모든작품. 타입문의 모든작품이 해당됩니다.

이외에도 은색, 스노우등이 있겠습니다.


23. 음악이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Kanon


24. 기대했는데 직접 해보니 폭탄이었던 작품이 있다면?
토모요 애프터를 빼고 딱히 없는것 같습니다. Key나 Type-Moon이 아닌 개발사에서 내놓는 작품들은 거의 다 '나온뒤에나' 해서 기대할 자체를 안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25. 18禁을 플레이하다 가족이나 연인에게 들킨적이 있었는가?
플레이 장면들은 어느정도 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H씬은 한번도 안들켰습니다.


26. 25번 질문에서 있었다면, 혹은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솔직하게 말할겁니다. 희망사항입니다만 아마 뭐라고는 안하겠죠(...)


27. 18禁을 미연시라고 부르는 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쎄요. 개인적으로 두개 모두 엄연히 구분이 되는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생각해보면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는것 같네요. 뭐 이해하고 넘어가 줘야겠죠 'ㅅ'?


28. 27번에서 대답한대로 생각하는 이유는?
중복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때문일까요?


29. 최근 들어 늘어가는 여성향 18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남자만 18禁이라던가 엣찌한것을 좋아해야된다는 이유가 없지요. 여자도 마찬가지로 동물의 일종입니다(응?)


30. 18禁을 플레이하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나?
점점 타락해가는 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자신감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대체 뭐가 어디서 잘못된 걸까요(...)


31. 현실 속의 여성과 18禁 속의 여성을 매치시켜본적 있는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아마 미래에도 이런일은 없을겁니다.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것이니까요.


32. 18禁에 처음으로 입문하려는 게이머에게 추천하고픈 게임은?
카논을 추천하겠습니다.(가능하면 전연령판으로..)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이쪽길 자체에 발을 들여놓으시는것에 반대합니다. 분명 후회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33.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있어 18禁이란 무엇인가?
꿈과 환상. 그리고 필요악.

by 떼굴 | 2008/07/24 13:30 | 병맛나는 일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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