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살펴본 전쟁의 '맨얼굴'과 시민병사의 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살펴본 전쟁의 '맨얼굴'과 시민병사의 힘 

병사는 결코 우아하게 죽지 않는다               

이글은 김상회 한백연구재단 부소장·政博 <sahngwhe@hanmail.net>님이 2회에 걸쳐 연재했던 글을 하나로 합친 글입니다. 2회분의 글을 하나로 합치면서 주제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했지만, 글 내용 자체에 손을 대지는 않았읍니다. 오래전에 쓰여진 글이기는 하나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군기'문제에 대해 매우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주는 글이라고 생각해 올리게 되었습니다. 허락없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소에 거의 '변장'수준에 가까운 진한 화장으로 꾸미는 여자의 '맨얼굴'을 대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그 모습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1998년 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는 거의 도발적으로, 화장기 없는 전쟁의 '맨얼굴'을 관객들에게 들이민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이라는 것의 실체적 진실에 직면해 당혹감을 느끼게 만든다. 차라리 외면해버리고 싶을 정도의 당혹감이다.

'타이타닉'과 마찬가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영화는 4형제 중의 한 명인 라이언 일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세 형제들이 모두 전사하는 불행을 당하자 구조대는 라이언 일병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그를 구출하는 작전에 나선다.

실존 인물은 뉴욕 출신의 프리츠 닐란드(Fritz Niland) 일병이다. 실제로 그의 세 형제 중 두 명은 노르망디 전투에서 전사했다. 나머지 한명은 나중에 살아돌아오기는 했지만 당시 버어마 전선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닐란드 일병이 노르망디 작전에 투입되자 미군 수뇌부는 닐란드 가문의 마지막 남은 아들만이라도 생존할 수 있도록 노르망디 전투 지역에 배치되었던 그를 후방 지역으로 옮겨주는 '특별 배려'를 한다.

영화는 만약에 미군 수뇌부가 닐란드 일병을 노르망디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구조대라도 조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나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등에서 보여준 스필버그다운 상상력과 영화의 원작(D-Day, June 6, 1944)을 집필한 미국의 저명한 전쟁 역사학자이자 이영화의 자문을 담당한 스티븐 앰브로스(Steven Ambrose)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치열한 '사실적 접근'의 결합이 바로 이 영화이다.

스필버그의 상상력과 결합한 전쟁사학자의 사실적 접근

영화는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미군들의 오마하 해안(Omaha Beach) 상륙 '전투'로 시작된다. 첫 도입부의 무려 30분간이 이 전투 장면에 할애된다.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만큼 수많은 전쟁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하나의 전투 장면이 30분간이나 지속되는 영화는 없다. 그런 데도 많은 관객들이 그 장면이 그토록 오래 계속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지루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30분이라는 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스필버그의 전투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영화등급 판정이 주로 '폭력성(violence)'과 '선정성(nudity)'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이 정도로 적나라한 폭력성을 여과없이 담아낸 영화가 어떻게 'R(Restricted:성인용으로 제한)등급' 판정을 피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독일군 진지가 만반의 '환영 준비'를 갖추고 있는 오마하 비치에 미군 상륙정들이 새까맣게 몰려든다. 상륙정 안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미군 병사들이 '달랑' 소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공포와 긴장으로 마치 사형장을 향하는 사형수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상륙 명령을 기다린다. 몇몇은 십자가 목걸이에 키스라도 하지만 대부분은 표정조차 없다. 이미 시체와 같다.

드디어 상륙이 시작되고 독일군의 집중 사격이 시작된다. 많은 병사들이 땅에 발도 못 디뎌 보고 상륙정 안에서 죽어간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총탄이 몸을 관통하기도 한다. 바다는 순식간에 피빛으로 물든다. '요행히' 그 때까지 살아남은 병사들은 소총 한 자루 들고 생사를 오로지 운에 맡긴 채 폭탄이 터지고 총탄이 그물같이 덮이는 해변을 그야말로 아무런 대책없이 질주한다.

그때까지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쟁영화나, 같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The Longest Day(1962)'는 이런 장면에서 항상 원거리 촬영을 해왔다. 원거리 촬영을 통해 전쟁의 끔찍한 '맨얼굴'을 피해 왔다. 적의 진지를 향해 돌진하던 병사가 총에 맞아 고꾸라지고 폭탄에 몸이 튕겨져 나가는 모습이 원거리에서 '조망'될 뿐이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발칙하게도', 선수의 거친 소리와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잡아내는 새로운 스포츠 중계 기법처럼 병사들 하나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총에 맞은 병사는 '우아하게' 죽지 못한다.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쏟아진다. 팔이 잘려 나간 병사는 떨어진 자기 팔을 주워 들고 망연히 해변을 헤맨다. 마치 군의관을 찾아 팔을 붙여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려는듯. 파열된 수도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병사들 몸에서 피가 솟구치고, 카메라 렌즈에까지 핏방울이 튄다. 부상 당한 병사는 죽지도 못한 채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자기 다리에 자기 손으로 앰플 주사를 마구 찔러댄다. 출혈로 얼굴은 백랍처럼 창백해지고 사지에는 경련이 일고 자신의 끔찍스러운 부상부위를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더듬어 보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고통과 공포는 극에 달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죽어간다.

스포츠 중계처럼 병사들에게 카메라 들이대

전쟁이라는 인간의 행위를 그 전쟁의 목적이나 정치적 동기, 혹은 옳고 그름 따위의 관점이 아닌 참가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재구성하는 데 주력했던 앰브로스는 '자신이 총에 맞은 줄도 모르고 깨끗하고 우아하게 죽는 행운을 누릴 확률은 1%도 안 된다'고 증언한다. 전사자의 99% 이상이 극심한 고통과 공포 속에 죽어간다는 것이다. 앰브로스는 또 지금까지 만들어진 전쟁영화의 전투 장면들은 '사실과 다르게 너무나 깨끗하고, 표피적이고, 짧게 그려져 왔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전쟁의 '30년 주기설'을 주장한다. 30년마다 커다란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30년이라면 세대의 교체 주기와 일치하는 시간 단위이다. 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세대가 바뀌면서 그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사라지고 전쟁의 참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새로이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큰 전쟁이 30년 주기로 터지는 까닭

세대가 바뀌어도 전쟁의 참상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전쟁 문학, 전쟁 미술, 전쟁 영화가 담당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거의 대다수의 전쟁 문학과 전쟁 영화는 전쟁 영웅을 그려내고 이들을 미화한다. 참상을 묘사하기보다 승리를 찬미하고, 전쟁 속에 '꽃피는' 전우애나 사랑 따위를 전면에 배치한다. 심지어 코미디물로까지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기에 급급하다. 그 결과 전쟁의 참상은 가려지고, 전쟁이라는 것은 때로는 '멋지고' 때로는 '로맨틱'하기까지 한 '해 볼만 것' 쯤으로 인식된다.

다행히도 1970년대 말, 특히 베트남전쟁 이후 전쟁의 비인간성, 참상을 고발하는 '플래툰(Platoon),'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8),' '디어 헌터(Deer Hunter:1979)' 등 몇 편의 '반전영화'가 제작되었고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 중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가장 도발적으로 전쟁의 '맨얼굴'을 충격적인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그 시작과 과정에서 지구촌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국가와 민족, 인종을 초월하여 '전쟁 반대'라는 공감대를 확보하고 한 목소리를 내었다.

인류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커다란 전쟁'을 경험한 지 30년에서 5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제 그 전쟁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전쟁의 '한 세대 주기설'에 따르면 분명히 위험한 시간대를 통과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재앙을 경험한 지 벌써 한 세대 이상 시간이 흘렀지만 지구촌의 대다수 사람들이 '반전'에 공감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이고 또 고무적인 현상이다.

'플래툰','지옥의 묵시록','디어 헌터' 등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영화들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여준 전쟁의 '맨얼굴'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만은 안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바라건대 스필버그가 우리 앞에 들이댄 전쟁의 '맨얼굴'에 질겁해서라도, 그리고 그 도입부 30분간의 영상을 악몽처럼 자꾸 기억해서라도 전쟁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이다.

자유로운 병사는 기꺼이 죽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스필버그 감독이 섬찟하리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낸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대학살극에서 실제 희생자 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독일군 3만명, 미군 2만9천명, 영국군 1만명이 각각 전사하였다. 웬만한 도시 인구 규모의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한 셈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확인된 전사자들일 뿐이다. 사실상 전사자로 분류되는 실종자 수는 독일군만 21만명에 달한다. 미군 실종자수도 10만명에 달했다. 결국 하나의 '전투'에서 30~40만명이 희생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목포나 포항 정도의 인구 전체가 사라진 셈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쟁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광기에 가까운 살육전이었다. 흔히들 일본군이 가장 정신무장이 철저하게 돼 있고 용맹무쌍하다고들 하지만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도 이렇게 처절하지는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은 지 6년 후 한반도에서 재연된 것이 '인천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은 '무식'하고 야만스러운 전투의 대명사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전에선 10만명의 북한군이 방어에 참가했고 7만명의 미군이 투입되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이 작전은 그러나 2시간 만에 '싱겁게' 끝났다. 미군 전사자 수는 300명에 불과하였다. 미군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치자 월미도를 방어하던 북한군은 제대로 항전도 못하고 진지를 버린 채 도주했다. 그 다음 날 김포쪽에서는 맨발로 도주하던 6000여명의 북한군 병사가 미군의 포로가 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마치 미군이 바그다드에 한 발이라도 들여놓으면 사생결단 내고야 말듯 '허풍'떨던 이라크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가 정작 미군이 들이닥치자 무기를 버리고 군복을 벗어던진 채 총 한 방 변변히 쏘아보지도 않고 도주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노르망디, 인천, 그리고 바그다드

노르망디와 인천과 바그다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북한이나 이라크같이 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 당하고 정신무장을 강요당하면서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도주하고, 독일군같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에서(독일의 경우, 적어도 히틀러 이전까지) 성장한 병사들은 그렇게 용맹스럽게 싸웠을까? 어떻게 한 전투에서 30만명 가까운 전사자를 내는 광기에 가까운 사생결단의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을까.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기강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어려울 것 같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훈련도 제대로 안 받은 채 전선에 투입된 미군병사들은 또 어떻게 그렇게 용맹했을까?

전투의 현장에 있었던 병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집요하게 추적한 스티븐 앰브로즈(Steven Ambrose)의 '사실적 기록'을 토대로 제작된 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많은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Tom Hanks)인 밀러(Miller) 대위는 직업군인이 아니다. 전쟁 전에는 평범한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밀러 대위는 자신의 고등학교 제자뻘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훈련도 제대로 안 받은 병사들을 인솔하고 노르망디의 살륙전에 뛰어든다. 그런 데도 그들 '시민 병사(citizen soldier)'들이 그곳에서 보여준 용맹성은 실로 가공할 만하다.

밀러 대위의 부대원들은 상륙 과정에서 이미 수없이 죽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해변에 도착한다. 엄폐물 뒤에 납작 엎드리고 있던 그들은 "너희들이 여기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뒤에 오는 병사들이 오지 못한다'는 한 마디에 또 다시 목슴을 내놓고 뛰기 시작한다. 그들이 거기서 주저 앉았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끝장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저히 뛰쳐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병사들은 뛰었고 죽어갔다.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로 한 공립학교의 파트 타임 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대했던 미국 고등학교의 자유분방함을 넘어서 방종에 가까왔던, 그야말로 엉망진창, 난장판에 가까왔던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이다. 수업시간에 교사보다 더 큰 소리로 '당당하게' 잡담을 하고, 수업 중에도 아무 때나 교실을 들락거리고, 쉬는 시간에 교사가 지나가는데 복도에 늘어서서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교사 얼굴에 대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 '아이들'이 전쟁터에서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용맹스러워진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돌격하지 않으면 사살해버리겠다는 일본군 부대장 식의 협박 없이도 미군 병사들은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뛰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독일군들은 독일군들대로 진지 앞에까지 진격한 미군을 맞아 북한군이나 이라크 병사들처럼 도주하지 않았다. 미군과 얼굴을 마주댄 채 수류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끝까지 총질을 해댄다. 그렇게 서로 싸우다 30,40만명이 죽어갔다.

자유로운 병사가 용감하다

스티븐 앰브로즈, 빅터 데이비스 핸슨(Victor Davis Hanson) 등의 전쟁 역사가들은 '자유로운 병사가 용감하다'고 결론 내린다. 누구의 강압에 못이겨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인식할 때, 그리고 그러한 가치가 자신들에게 부여될 때 병사들은 목숨을 바쳐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민 병사'의 힘이라고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앰브로즈는 아마도 그것을 보여주려 상당히 노력했던 것 같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적진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밀러 대위의 부대원들은 서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고 불평을 쏟아내기도 한다. 한 대원이 자기는 이런 짓은 못하겠다며 중도에 빠지겠다고 하자 밀러 대위는 그러라고 하면서 "네가 부대에서 이탈하더라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그 대원은 이탈하지 않고 행동을 같이한다. 밀러 대위는 도중에 전사한 어린 병사가 애처로워 숨어서 흐느껴 울기도 한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밀러 대위의 부대는 상급자의 일방적인 결정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전 대원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모아 대처한다. 중구난방의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에 모두들 힘을 합친다.

절대 열세였던 이들은 독일군의 전차부대를 맞아 양말을 벗어 그 속에 수류탄을 몇 개씩 집어넣는가 하면 콜타르에 묻혀 독일군 탱크 바퀴에 붙여 폭파하기도 한다. 수류탄과 탄환이 모두 떨어졌을 때는 박격포탄의 뇌관을 제거하고 집어던져 수류탄 대용으로 사용하는 '창의성'을 발휘한다. 질겅질겅 씹던 껌으로 깨진 거울쪽과 길다란 막대기를 접합시켜 적진을 살피는 '신병기'를 즉석에서 제조하기도 한다. 모두가 철저한 '고증'에 의해 재구성된 '사실'들이다. 그러한 일체감과 창의성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지시에 의한 조직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것들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다, 신세대 병사들의 군기가 엉망이다'하는 우려가 많이 들린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여주는 노르망디 상륙전투는 군대의 진정한 군기는 강압적이고 혹독한 훈련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 개개인에게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보장되고 병사들 개개인이 마음 속으로 그것들이 목숨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할 때 생기는 것임을 시사한다.

'왠지 시시껄렁해 보이고 군기가 빠져보이던' 미군은 목슴을 내놓고 싸웠고, '살벌하기 짝이 없어' 보이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는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한국군은 어느 쪽일까? 북한군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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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 2008/08/03 18:02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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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llouin at 2008/08/04 07:27
생각해 볼만한 글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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